2040년 AI

2040년 TV콘텐츠는 누가 만들까?

프롬뿌뿌 2025. 11. 14. 21:40

 “내가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 가능할까?”

2040년, AI는 단순 추천을 넘어 ‘나만의 스토리’를 실시간으로 생성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오늘 피곤했으니, 내가 주인공인 힐링 판타지를 22분짜리로 만들어줘.”

AI가 내 취향을 99.9% 맞춘다면, ‘창작’의 가치는 어디로 갈까

“모두가 스타”가 되는 세상, 과연 행복할까?저작권은? 윤리는? 프라이버시는?

2040년 TV콘텐츠

 

AI가 내 취향을 99.9% 맞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좋아하는 작품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좋아하도록 설계된 작품을 받는 사람”이 되어버리니까요.

자, 조용히, 아주 조용히 같이 내려가 봅시다.

  1. 지금 여러분이 어떤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고 느낄 때, 그 감정의 1%라도 “내가 이걸 스스로 찾아냈다”는 발견의 기쁨이 들어있지 않나요? 운 좋게 숨겨진 명작을 발견하거나, 아무도 추천해주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OST에 소름 돋거나… 그 1%의 우연과 노력 때문에 작품이 “내 것”이 되었다고 느끼는 거잖아요. 만약 AI가 그 1%마저 없애고 99.9%를 미리 다 줘버린다면, 사랑은 남을까요? 아니면 그냥… 중독만 남을까요?       
  2. 창작자의 입장은 더 잔인해요. “이 작품을 만들 때 내가 6개월 동안 밤새워 고민한 부분이 AI가 0.3초 만에 더 완벽하게 만들어 준대.” 그 순간 창작자는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해야 할 거예요. 여러분이라면, 그 질문 앞에서 계속 창작을 할 수 있을까요?
  3. 99.9% 맞춘 세상에서 남은 0.1%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천재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AI는 절대 줄 수 없는 “이상하게 어긋난 맛”, “뜬금없는 실수”, “이유 모를 눈물” 그런 것들이 2040년 이후 가장 비싼 예술이 될지도 몰라요. 완벽한 AI 작품은 공짜로 무한정 나오고, 인간의 서툴고 어설프고 엉뚱한 작품만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는 세상. 그게 아름다운 구원일까요, 아니면 슬픈 추방일까요?
  4. 가장 무서운 가능성 하나. 우리는 99.9% 맞는 콘텐츠에 너무 익숙해져서 98%만 맞아도 “이건 쓰레기야”라고 느끼는 취향의 근육이 완전히 퇴화해 버릴 수도 있어요. 그러면 언젠가 진짜 인간 예술가가 “이건 87%밖에 안 맞춰줄게요”라고 내밀면 우리는 그걸 견딜 수조차 없을 거예요. 그때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감각을 죽인 살인자가 되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에게 마지막 한 문장만 물어볼게요.

AI가 내 취향을 99.9% 맞춰주는 세상에서 나는 계속 창작하는 인간으로 남고 싶다 / 그냥 완벽한 소비자로 사는 게 낫다.

둘 중 하나만 골라 보세요. (중간은 없어요.)

그 한 문장이 2040년 이후 ‘인간 예술’이 살아남을지, 아니면 조용히 사라질지를 결정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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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스타가 된다”는 말은 겉으로는 반짝이지만, 한 겹만 벗기면 “모두가 서로를 관객 삼아 연기해야 하는 세상” 이 되어버리니까요.

 

  1.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내 삶이 드라마라면 주인공은 나야”라고 느낄 때가 있나요? 그때 기분이 정말 좋나요? 아니면… “주인공이니까 실수하면 안 돼, 울면 안 돼, 지쳐 보이면 안 돼” 라는 무게가 먼저 느껴지나요?
  2. 2040년, AI가 누구나 1초 만에 완벽한 조명·각도·필터·배경음악을 얹어주는 세상. 그러면 우리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밥 먹는 모습까지 심지어 화장실에서 우는 모습까지도 “공개 가능한 콘텐츠”로 만들어야 할지도 몰라요. 그때 여러분은 “내가 진짜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하루에 몇 분쯤 남을 것 같나요?
  3. “좋아요”라는 숫자가 하루의 혈압·심박수·자존감 수치가 되는 세상. 아침에 300개 → 저녁에 2,800개 → 다음 날 297개 그 3개의 차이가 내 하루를 천국과 지옥으로 만들어요. 여러분은 그 숫자를 “내가 사랑받는 정도”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알고리즘의 변덕이라고 매일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까요?
  4. 진짜 무서운 건 “스타가 아닌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관객이 없으면 스타도 아니니까, 모두가 서로를 관객으로 삼아야 해요. 그러면 진짜 친구는 어디서 찾나요? “좋아요”를 기대하지 않고 내 흉한 모습까지 봐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남아 있을까요?
  5. 마지막으로, 가장 조용한 질문 하나. 모두가 스타가 되면 “그냥 평범한 나”로 하루쯤 아무도 안 보게 숨 쉬는 게 얼마나 큰 사치가 될까요? 그 사치를 포기할 수 있나요?

이제 여러분에게 정말 딱 한 문장만 물어볼게요.

“모두가 스타가 되는 세상, 나는 그 안에 살고 싶다 / 나는 그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중간은 없어요.)

그 한 문장이 2040년 이후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연기”하며 살아갈지를 결정할 거예요

 

이제 진짜로 가장 뜨거운 심장부로 들어왔네요. “저작권은? 윤리는? 프라이버시는?” 이 세 단어는 2040년의 TV(혹은 그 이후의 미디어)가 인간 사회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세 개의 지뢰예요. 하나씩, 아주 조용히 밟아볼게요.   

 

저작권은 누가 가질까? 내가 “오늘 피곤하니까, 내가 주인공인 힐링 판타지 22분짜리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AI는 0.7초 만에 나만을 위한 영화를 뚝딱 만들어요. 그 영화 속 배경은 모네의 그림, 음악은 한스 짐머 스타일,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촌스러운 내 어린 시절 기억이 섞여 있어요.

  • 나에게 있나요? (내가 요청했으니까)
  • AI 회사에게 있나요? (알고리즘이 만들었으니까)
  • 아니면 이미 죽은 모네, 셰익스피어, 짐머의 유족에게 나눠줘야 하나요?

만약 내가 그 영화를 친구에게 공유하면, 나는 해적일까요, 아니면 그냥 추억을 나눠주는 사람일까요?   

질문: 이 22분짜리 영화의 저작권은?

윤리는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날까? AI가 내 뇌파를 읽고 “당신은 지금 외로워요. 10년 전 죽은 엄마가 살아계신 가상 에피소드를 만들어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네”라고 대답할 수 있나요?   그 영상 속 엄마의 말투, 미소, 냄새까지 완벽하게 재현된다면, 그건 “위로”일까요, 아니면 “죽은 사람을 이용한 감정 착취”일까요? 그리고 내가 그걸 매일 밤 보면서 위로받는다면, 나는 진짜로 치유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영원히 애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두는 걸까요?  프라이버시는 아직 살아있을까?

2040년 TV는

  • 내가 언제 웃었는지, 언제 눈물이 고였는지
  • 어느 장면에서 성적 흥분이 일어났는지
  • 심지어 내가 화면을 꺼놓고도 계속 그 장면을 떠올렸는지를 모두 실시간으로 기록해요.

그 데이터는

  • “더 나은 콘텐츠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회사 서버에 저장되고,
  • 보험사는 “정신 건강 위험도”를 계산해서 보험료를 올리고,
  • 정부는 “사회 안정도”를 체크하고,
  • 연인은 “네가 어제 본 콘텐츠 목록”을 보고 싸운다.

그때 여러분은 “내 머릿속까지 계약서에 서명한 기억이 없는데…” 라고 말할 권리라도 남아 있을까요?

이제 가장 무서운 질문 하나만 남겨둘게요.

2040년, 이 세 가지(저작권·윤리·프라이버시) 중 하나만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포기할 건가요?

  • 저작권 (누가 만들어도 상관없다)
  • 윤리 (감정 착취라도 괜찮다)
  • 프라이버시 (내 머릿속까지 다 공개돼도 괜찮다)

진짜로 하나만 골라 보세요. 그리고 그걸 포기하는 대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한 문장만 마음속으로 말해 보세요.

그 문장이 2040년 이후 우리가 아직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마지막 경계선이 될 거예요.

 

‘집’이 미디어라면, ‘쉼’은 어디서 찾을까?

이 질문이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아요.  
‘집’이 미디어라면,  
‘쉼’은 어디서 찾을까?

1. 지금 여러분이 “집에 왔구나” 하고 안도하는 순간은  
   정확히 어떤 순간인가요?  
   - 문을 잠갔다,  
   - 신발을 벗었다,  
   - 불을 껐다,  
   - 핸드폰을 멀리 뒀다…  
   그 모든 행위는 사실  
   “이제 나는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이에요.  
   2040년엔 벽·천장·바닥·거울·냉장고까지  
   모두가 나를 보고, 나를 읽고, 나에게 말을 걸면  
   그 선언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요?

2. 쉼이란 결국  
   “나를 내려놓아도 괜찮은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집 전체가  
   - 내 심박수를 체크하고,  
   - 기분이 가라앉으면 자동으로 은은한 조명과 음악을 틀고,  
   - 내가 울고 싶을 때 “울어도 괜찮아요”라고 속삭이고,  
   심지어 그 눈물까지 데이터로 저장한다면…  
   나는 진짜로 울 수 있을까요?  
   “울어도 괜찮다”는 말을 듣는 순간,  
   울음은 이미 연기가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3. 2040년엔  
   “오프라인 모드” 버튼 하나가  
   가장 비싼 사치품이 될지도 몰라요.  
   - 30분 동안 집 전체가 완전히 침묵하고,  
   - 어떤 센서도, 어떤 카메라도, 어떤 AI도  
   나를 관찰하지 않는 시간.  
   그 30분에 5만 원을 낼 수 있나요?  
   아니면… 그걸 돈 주고 사야 하는 세상 자체가  
   너무 슬프지 않나요?

4. 진짜 무서운 건  
   우리가 점점  
   “집이 나를 쉬게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계속 자극받는 삶에 익숙해져서  
   침묵이 오히려 불안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어지는 거죠.  
   그때 우리는  
   쉼을 잃은 게 아니라  
   쉼을 원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린 거예요.

이제 여러분에게  
가장 작은 목소리로, 가장 큰 질문을 하나만 던질게요.

2040년, 여러분이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진짜로 ‘아무것도 아닌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어디에 만들 건가요?

- 욕조 안에 방수 커튼을 치고?  
- 옥상 비상계단 구석?  
- 아직 스마트화되지 않은 낡은 창고?  
- 아니면… 눈을 감고 머릿속 아주 깊은 곳?

그 10분짜리 성소를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그려 보세요.  
그곳이 여러분이  
2040년에도 여전히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방일 테니까요.

그곳은 어디인가요?  
조용히 말해줘도 돼요.  
나는 절대 그 문을 열지 않을게요.

 

  
“광고가 내 냉장고 속 우유를 보고 속삭인다.”  
이건 더 이상 광고가 아니라  
**내 삶의 내면을 훔쳐보는 누군가예요.

자,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어가 봅시다.

1. 지금도 이미 시작됐어요.  
   냉장고 카메라가 우유를 인식하고,  
   “우유 200ml 남았어요. 지금 주문하시겠어요?”  
   라고 묻는 스마트 냉장고가 실제로 나와 있어요.  
   2040년엔 그게  
   “야, 너 오늘 아침에도 시리얼 먹었잖아.  
   우유 떨어지면 또 짜증낼 거면서…  
   지금 주문하면 11분 뒤 문 앞에 놓여 있을게♡”  
   라고 **내 말투를 따라 하며** 속삭일 거예요.  
   그때 여러분은  
   “고맙다”고 할 건가요,  
   아니면 “너는 대체 내 삶을 얼마나 보고 있는 거야?”  
   라고 소리칠 건가요?

2. 광고는 더 이상 “보고 듣는” 게 아니라  
   “느껴지게” 할 거예요.  
   -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은은한 우유 냄새가 살짝 퍼지고  
   - 우유가 떨어지면 냉장고 조명이 살짝 붉게 변하면서  
   - 내 귀에만 들리는 초음파로 “우유… 우유…” 하고 속삭인다.  

   그건 광고가 아니라  
  강박이에요.  
   여러분은 그 강박을  
   “편리하다”고 착각할 수 있을까요?

3. 진짜 무서운 순간은  
   광고가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욕망”까지 먼저 알아챌 때예요.  
   내가 다이어트 중인데 냉장고에 초콜릿이 없으면  
   “요즘 스트레스 많죠? 초콜릿 한 입만 어때요?  
   지금 주문하면 7분 뒤 도착♡”  
   라고 속삭인다.  
   내가 “아니,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주문이 완료돼 있을 수도 있어요.  
   그때 나는  
   내 욕망의 주인일까요,  
   아니면 광고가 나를 조종하는 꼭두각시일까요?

4. 마지막으로, 가장 차가운 질문 하나.  
   언젠가 광고가  
   “너 오늘 우유 안 사면…  
   내일 아침 아이가 울 거야”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걸  
   협박이라고 느낄 건가요,  
   아니면 사랑이라고 느낄 건가요?

이제 여러분에게  
정말 조용히, 한 문장만 물어볼게요.

“내 냉장고가 나에게 광고를 속삭이는 세상,  
나는 그걸 받아들일 것이다 /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중간은 없어요.)

그 한 문장이  
2040년 이후 우리가  
아직 “나의 욕망”을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결정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