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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최악 피했다’지만…투자 결정권, 반도체 미완 논란
- 수정 2025-10-30 20:21
- 등록 2025-10-30 19:53



미국과의 관세협상 타결을 놓고 경제계는 불확실성이 걷혔다며 환영하고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거액의 현금 투자에 대한 결정권이 기본적으로 미국에 있는데다, 반도체 품목관세가 ‘미완’으로 남으면서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30일 전문가들은 3500억달러(약 500조원) 펀드 중 2천억달러는 200억달러씩 10년간 분산 투자하고, 1500억달러는 조선 협력 사업에 한국 주도로 투자한다는 정부 설명을 두고 외환시장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교적 선방했다고 평가한다”며 이번 합의가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통상학)는 “(외환시장 안정성 유지라는) 필요조건 부분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며 ‘상업적 합리성’을 놓고도 “일본보다는 조금 나은 안을 가져온 부분은 조심스럽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도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국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평가의 배경에는 전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브리핑에서 ‘상업적 합리성’ 보장 장치들을 마련했다고 밝힌 점도 있다. 김 실장은 “투자 금액을 충분히 환수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보장”된다고 판단하는 사업만 한다는 점을 한·미가 양해각서(MOU)에 명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가 이익을 5 대 5씩 가져가되 20년 안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하면 수익 배분 비율 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애초 밝힌 규모에 비해 현금 투자는 크게 늘었다. 김 실장은 7월30일에 한·미가 큰 틀에서 합의한 이후 현금 비중은 “5% 미만일 것”이라고 했다. 최종 타결된 현금 비중은 57%로 그 10배 이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5500억달러를 투자하는 일본과 달리 10년에 걸친 현금 투자로 부담이 줄었다지만 차기 정부가 부담을 넘겨받는 문제도 있다.
미국이 투자처 결정을 주도하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김 실장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투자위원회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협의위원회를 이끈다고 밝혔다. 미·일 양해각서에는 “투자위원회는 미국 대통령에게 투자처를 추천하기 전에 양국이 지명한 이들로 구성된 협의위원회와 협의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한·미도 이를 준용하면 한국 쪽은 의견을 내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의 참여 정도도 숙제로 남았다. 최근 트럼프의 방일 결과를 담은 백악관 팩트시트(설명자료)에는 10여개 일본 기업이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해 차세대 원자로 등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약 4천억달러 규모의 투자 의향을 밝혔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부로서는 수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내 기업 참여 확대를 위해 미국과 줄다리기를 해야 할 형편이다.
반도체 품목관세 인하 여부가 이번 합의에 담기지 않은 것도 우려를 남긴다. 김 실장은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이는 반도체 품목과 관련해 미국과 상호관세율(15%)을 초과하지 않도록 약속한 유럽연합(EU)이나 최혜국대우를 받기로 한 일본과 다른 점이다. 현재 50%인 철강 관세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 점도 한계로 꼽힌다.
이본영 유하영 김윤주 이재호 기자 ebon@hani.co.kr
"정상들을 녹여라"… 금관부터 김·빵까지 뜨거운 선물 외교전
APEC 계기, 주목받는 '정상 선물'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천마총 신라 금관 모형이 연일 화제가 되면서 ‘선물 외교’도 주목받고 있다. 정상 외교 무대에서 선물은 회담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회담 장소의 상징성이나 상대의 취향을 조사한 뒤 상대국과 조율해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 190돈(712.5g·약 1억4000만원)이 들어간 ‘무궁화 대훈장’과 함께 선물로 금박을 두른 신라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답례로 이 대통령에게 야구 방망이와 야구공을 선물했다.

대통령실은 황금색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해 10월 초 제작을 의뢰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각국 정상들로부터 황금 투구, 황금 왕관 등을 선물받았다. 금관 모형 선물은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비판자들이 그를 ‘왕’에 비유하며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금관 선물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라 금관을 쓰고 춤추는 모습을 담은 합성 영상도 올라왔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지난 28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박을 입힌 ‘황금 골프공’,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쓰던 퍼터, 일본인 최초로 메이저 골프 대회에서 우승한 마쓰야마 히데키의 서명이 들어간 골프 가방 등을 선물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선물이다. 마쓰야마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라운딩을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답례로 어떤 선물을 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30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일본 총리에게 김과 화장품을 선물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김을 좋아하고, 한국 화장품을 사용한다”고 했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과 자매결연을 한 가마쿠라시에서 제작한 바둑돌을 선물했다.
APEC 정상회의 주간을 계기로 방한한 미·중 정상은 지난 30일 부산 김해공항 영빈실에서 회담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추가 관세, 희토류 수출 통제 등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이날 양측이 선물을 교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임시 휴전 성격의 만남이었는데 선물을 주고받을 분위기였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앞서 2017년 미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미국 마러라고 리조트 저택이 그려진 도자기 식기 세트 등을 선물했다.
1일 경주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 주석에게 줄 선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 주석은 트럼프 미 대통령처럼 최고 의전이 제공되는 ‘국빈(國賓) 방문’ 형식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 주석의 취향을 고려해 신경 써서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이후 11년 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1일 시 주석과의 회담에 앞서 선물을 전달하고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바둑과 독서를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7월 국빈 방문한 시 주석에게 바둑돌과 한국에서 생산된 최고급 홍삼인 ‘천삼(天蔘)’을 선물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 국빈 방문 때 시 주석에게 ‘통(通)’이 적힌 신영복 교수의 서화 작품을 선물했고, 시 주석은 옥으로 만든 바둑판과 바둑돌, 말 그림을 줬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이 대통령은 선물과 별개로 시 주석에게 국산 팥으로 속을 채운 ‘경주 황남빵’을 이틀 연속 선물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30일 경주에 도착한 시 주석에게 ‘경주의 맛을 즐기시길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갓 만든 황남빵을 전달했다. 31일 APEC 회의장에서 이 대통령을 처음 대면한 시 주석이 “빵이 맛있었다”고 감사를 표시했고,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시 주석과 중국 대표단에 황남빵 200상자를 추가로 보냈다며 상자당 빵 30개가 든 황남빵 상자 사진도 공개했다. 이날은 다른 국가 대표단에도 황남빵이 전달됐다.
한미, 관세 타결 후 서로 다른 말
美상무 "반도체, 합의에 포함 안돼"
정부 "대만 수준의 관세 적용 합의"
한미 양국이 29일 정상회담을 통한 관세 협상을 타결한 직후, 합의 내용을 두고 한미 간 설명이 엇갈리면서 진실 공방이 재연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은 30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이 시장을 100% 완전히 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한미 간 거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러트닉의 100% 시장 개방 발언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날 “쌀과 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추가 개방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미 FTA 등으로 이미 시장 대부분이 개방된 상태”라며 “100% 개방 표현은 자국민 여론을 의식한 레토릭인 것 같다”고 말했다. 러트닉의 반도체 발언에 대해선 대통령실은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는 데 합의했다’고 확인했다. 러트닉의 발언이 ‘반도체 관세율을 문서화한 결과물에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 무대에서 선물은 회담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회담 장소의 상징성이나 상대의 취향을 조사한 뒤 상대국과 조율해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